열녀 국지 이야기 - 신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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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녀 국지 이야기 - 신촌 소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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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녀 국지 이야기 - 신촌
북제주군 조천읍 신촌리는 정절의 마을로 잘 알려져 있다.
특히, 신촌태샛의 여자인 “ 국지” 이야기는 이 마을뿐만아니라 제주도 전역에 걸쳐 유명하다.
이 마을 입구에도 이 여자의 비석이 안치되어 있다고 하는데,과연 국지라는 여자는 어던 사람일까?
고려말. 신촌리 마을 사람인 국지는 품관 홍질이란 사람과 결혼을 하게 되었다.
그런데 결혼을 한지 수일만에 남편이 목숨을 잃게 되어 청상과부가 되었다.
일찍이 정혼한 남편을 여의고 혼자 생활을 하게 되자 세상 사람들이 국지의 고운 얼굴에 반하여 사방에서 재혼의 청이 들어왔다. 그러나, 그녀는 이를 모두 거절하고 정절을 지켰다.
그럴수록 사람들은 국지의 미모와 아름다운 마음씨에 반하여 국지를 아내로 맞이하려고 온갖 행패를 부렸다. 그녀는 모든 재산을 버리고 시가로 옮겨가서 살았다.
어느날, 여느때와 다름없이 물을 길러 우물에 가는데 , 갑자기 나타난 한 청년이 그녀의 손목을 잡고 결혼해달라고 애원하였다.
분하고 원통한 국지는 그날 집에 돌아와 자기의 왼쪽 손목을 작두로 잘라 버렸다.
마을 사람들은 국지의 정절이 결코 꺾을 수 없을 만큼 굳음을 알게되어 그 후로는 행패를 부리려 들지 않았다.
그렇게 정절을 지킨 국지는 시부모님을 모시고 살다 결국 수절하고 말았다.
세상 사람들은 국지의 고운 얼굴보다 정절을 지키는 아름다운 마음씨를 높이 칭송하고, 정절의 표본으로 삼았다.
국지에 대한 칭송이 널리 퍼져 사람들의 입에 오르내리자 관에까지 알려지게 되었다.
서기 1634년에 나라에서 국지를 열녀라 칭하고 나무로 연려국지문이란 비석을 세웠다.
현재 신촌리 입구에는 애향탑 경내에 비석이 안치되어 있는데 이 비석은 신촌리민이 다시 세워 만든것이다.
묘는 신촌리 속칭 원남지경이라 부르는 곳에 안치되어 있다.
그후 국지열녀비의 이야기는 신촌뿐만 아니라 제주도내에 널리 알려지게 되었다.
또한, 자손들에게 대대로 전해져 내려오면서, 자녀 교육의 표본으로 삼아 정절의 고장으로 널리 이름을 날리게 하였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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