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전리 마고리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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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전리 마고리물 소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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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전리 마고리물
제주시에서 15-20분정도 소용되는 거리인 북제주군 애월읍 장전리.
이 마을에는 “ 마고리 물”이라고 부르는 샘물이 있는데, 바로 사시사철 물이 마르지 않고 계속흐르는 샘물.물이 귀한 제주도 중산간 마을에 사는 사람들에게는 없어서는 안될 귀중한 것이였다.
바로 북쪽 들판까지만 해도 흐르는 물을 이용하여 논밭을 가꾸고 주민의 생활용수로 활용했다.
고려시대. 대몽항쟁이 제주도에서 있었을 당시 이 물(마고리 물)은 바로 대몽항쟁군의 훈련군마에게 물을 먹이던 곳이라 전해지고 있는데, 그 연유로 이 샘물의 이름도 마고리 물(옛날 군마들이 먹던 물)이란 이름으로 오늘까지 전해오고 있다.
대몽항쟁의 책임자엿던 김통정 장군은 수차에 걸친 조정의 회유책에도 불구하고 별장 이문경, 류족현과 함께 대몽항쟁 최후 거점지인 항파두리성에서 고려의 김방경 장군과 원의 혼다 장군이 지휘하는 여몽연합군(수륙군 1만명, 병선 160척)의 제주 상륙작전에 대항하여 대접전이 벌어진 것이다. 군과 민이 총화 단결하고 최후의 결사 항전으로 피비린내 나는 혈전을 벌였으나 중과부적으로 이문경들이 전사하자 항파두리성은 함락되었다. 김통정 장군은 날쌘 용사 70여명을 이끌고 항파두리성을 탈출했으나 20일 후 자결한 시체로 발견됨에 따라 3년여 동안 끈질긴 대몽항쟁사는 1273년 5월 (고려 원종 14)막을 내리게 되었다. 이에 따라 살아서 투항한 항몽군과 가족들은 포로가 되어 귀환했고, 주민들은 조정의 지휘하에 뿔뿔이 흩어져 전도에 걸쳐 이산가족으로 생활했다. 그중 몇 세대들은 그대로 마을 근처에 흩어져 계속 마을의 명맥을 유지하면서 유목민처럼 살았을 것으로도 추정(된터 등 가장 오랜 집터와 구전되는 지명으로 보아)되고 있다.
그러나 연면히 이어온 역사의 기록을 알아볼 수 있는 고증 자료는 찾아볼 수 없는 상태여서 설촌 이후의 장전 역사가 단절된 형편으로 되어 있다. 1273년 (고려 원종 14) 이후 약 400여년간 1600년대 초반까지 오랜 세월동안 설촌 역사의 공백 기간이 생기게 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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