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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 여행정보 | 제주 문화의 수문장 돌하르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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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 문화의 수문장 돌하르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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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 문화의 수문장 돌하르방 소개
제주 문화의 수문장 돌하르방

구멍이 숭숭 뚫린 현무암으로 만든 돌하르방.
부리부리한 방울눈, 위엄있게 꽉다문 입술, 복코같은 주먹코, 그리고 한쪽 어깨를 치켜올린 다소 어색해보이는 모습의 돌하루방은 외세의 온갖 침탈과 척박한 자연환경속에서도 굴하지 않는 강인하면서도 소박한 제주사람들의 얼굴을 그대로 닮고 있다.

제주도하면 가장 먼저 생각나는 것이 돌하루방”이라고 대답할 정도로 돌하루방은 어느덧 제주의 상징물이 되었다.
공항입구, 마을 입구등 제주 곳곳에서 쉽게 볼 수 있는데, 돌하르방의 코를 문지르면 아들을 낳는다는 속설때문에 코부분이 닳인 모습은 익살스럽기만 하다.
돌할아버지라는 뜻의 제주도 사투리인 “돌하르방”이란 말은 근래에 들어서야 붙여진 명칭이고 원래는 우석목, 무석목, 벅수머리 등으로 불리워왔다.
1971년 문화재 이름으로 채택된 이후부터 그 이름이 급속도로 확산되기 시작하였다.
제주도 지방 민속자료 제2호인 이 돌하르방은 제주도가 행정구역이 3분되었던 약500년 동안(1416~1914) 제주목(제주시),대정진(대정읍),정의진(성읍리) 도읍지 성문 앞에 쌍쌍이 세워 졌었다. 모두47기가 있었는데 경복궁 한국 민속 박물관으로 2기가 옮겨져 지금 제주에는 45기가 남아있는데, 제주시에 21기, 대정읍에 12기, 표선읍 성읍리에 12기 등이 있다.
도시개발 등으로 인하여 지금은 당초 세워져 있던 자리가 많이 바뀌어 삼성혈, 관덕정, 제주시청, 제주대학, 제주방송국, 제주공항, 성읍리 등 여러 곳에 산재해 있다.
47기의 돌하르방들은 그 모습이 같아 보이지만 자세히 보면 지역에 따라 생김새와 특징이 각각 다르다.

제주목 돌하르방은 '우석목'이라고도 불리며 다른 지역에 비해 규모가 가장큰 것이 특징으,로 평균 신장이 187cm나 되어 마치 우람한 장수가 서 있는 것처럼 보인다.
특히 삼성혈 입구 동쪽에 있는 것은 전장 234cm로 돌하루방 중 가장 큰것이다.

정의현 돌하르방은 '벅수머리'로도 불리는데, 평균 신장은 141cm, 얼굴 형태는 둥근 편이며 눈꼬리가 조금 올라가 있다. 양손을 배쪽에 공손히 얹고 있고 전체적으로 나부죽하면서도 단아한 모습이다.
대정현 돌하르방은 '무석목'으로도 불리는데, 평균 신장이 134cm로 체구가 가장 작은 것이 특징.
가지런히 펼친 양손을 가슴 위아래로 공손히 얹은 것이 일반적이나, 개중에는 두 손을 깍지 낀 것도 있다. 다른 돌하루방에 비해 코가 낮고 입도 작으며, 특히 눈주위가 움푹하여 특이한 인상을 하고 있다.

구멍이 숭숭 뚫린 자연석인 현무암으로 만든 돌하르방.
방울눈을 부리부리하게 굴리면서, 위엄있게 꽉다문 입술, 복코라 불리누는 주먹코, 그리고 한쪽 어깨를 치켜올린 다소 어줍잖은 모습의 돌하루방은 외세의 온갖 침탈과 자연의 재해에도 굴함없이 싸워온 섬사람들의 투박한 모습을 단적으로 보여주는 제주문화의 상징이다.

이 석상들이 만들어진 시기는 확실치는 않으나 담수계(淡水契) 탐라지(耽羅誌)에 영조30년 목사 김몽규(金夢奎)가 만들었다는 기록이 보인다. 그러나 이 문헌에 대한 확증이 없고, 삼읍에 있는 것이 모두 같은 시기에 만들어졌다고 생각하기도 어렵다. 제작 연대는 훨씬 거슬러오를 것으로 추측되고 있다.
제주의 문화재 190쪽을 살펴보면, 진시황 때 흉노족 등을 격파하였던 완옹중이 죽은 후 진시황은 그의 공을 생각하여 그의 상을 구리로 만들어 아방궁 문밖에 세워 두었다.
흉노족이 완옹중이 죽었다는 말을 듣고 원한을 풀기 위하여 쳐들어왔으나 멀리서 아방궁 쪽을 바라보니 완옹중이 의젓이 서 있으므로 그대로 도망갔다는 것이다. 이 때 진나라 사람들이 완옹중은 살아서나 죽어서나 나라를 지킨 수호신이라 하여 그의 상을 구리나 돌로 만들어 궁궐이나 관아 앞에 세우게 되었다.
이에 착안하여, 김몽규는 숙종 영조때 흉년이 자주 들어 굶주리거나 전염병으로 죽은 자가 많았고 그 중에는 원귀가 되어 생인을 괴롭힌다 하므로 3문 밖에 옹중석을 만들어 세우고 원귀가 드나들지 못하도록 한 것이다. 이것이 예가 되어 정의현과 대정현에도 성문 밖에 옹중석을 만들어 세웠다.(제주통사 164-166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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